봉숭아 꽃물
『봉숭아 꽃물』은 김상자 작가의 한국하이쿠 작품집으로, 봄·여름·가을·겨울 네 모둠에 걸쳐 총 200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작품들은 한국의 사계와 일상에서 포착한 미세한 감각을 한 줄의 여백으로 응축해,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보게 하는 “낯설게 하기”의 순간을 길어 올린다. 저자는 교사·청소년 상담·사설 박물관 운영 등 삶의 현장에서 축적한 관찰과 기억을 바탕으로, 크게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삶의 진실을 한글의 결로 담아낸다. 각 작품은 영어 번역과 함께 제시되어 동시대 한국하이쿠의 세계적 소통 가능성을 넓힌다. 또한 문학평론가 안수현의 평론 「김상자 한국하이쿠에 나타난 유교미학의 계승」을 통해, 형식(예·경·성·중용)이 억압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미학적 기술로 작동하는 지점을 입체적으로 해설한다.
도서 상세 설명
책소개
목차
한 줄의 여백, 한글의 숨결로 걷다
Walking with the Breath of Hangul in a Single Line of Space
첫째 모둠 : 피었다는 말 없이 First Section: Without saying it bloomed
「물 속의 사찰」 외 49편
“Temple of water” and 49 Others
둘째 모둠 : 고집 센 여름 Second Section: Stubborn Summer
「타오른 햇살」 외 49편
“Blazing sunlight” and 49 Others
셋째 모둠 : 저문 가을 빛 Third Section: Dimming Autumn Light
「고택의 미여」 외 49편
“Beauty of an old house” and 49 Others
넷째 모둠 : 꼬리 긴 겨울 Fourth Section: The Long-Tailed Winter
「마지막 한 장」외 49편
“The last page” and 49 Others
평 론 Critical Essay
「김상자 한국하이쿠에 나타난 유교미학의 계승」
“Inheriting Confucian Aesthetics in Kim Sangja’s Korea Haiku”
나오는 말 Epilogue
지우고 남은 한 줄
The Line That Remains After Erasing
저자소개
하이쿠와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짧은 한 줄이 남기는 긴 여운은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웠다. 이후 그는 부산의 바닷바람과 골목의 빛, 시장의 소리 등 한국의 생활 풍경과 사계를 한글의 음색으로 담아내는 한국하이쿠에 마음을 두었다. 더 많이 말하기보다 더 정확히 느끼게 하는 한 줄의 시를 지향한다.
요약·본문
어디서 왔니
나비냐 나방이냐
관세음보살
달빛 여울가
서서 잠든 왜가리
물고기 하품
마른 가지 툭
담장 밑 흰 고양이
동그란 두 눈
‘어디서 왔니’라는 물음은 호기심이면서 동시에 경계다. 우리는 대상을 곧바로 분류하고 확정함으로써 안심한다. 나비냐 나방이냐—유익한가 해로운가, 예쁜가 불쾌한가—이 양자택일은 세계를 빠르게 안정시키지만, 그 안정은 종종 대상에 대한 폭력이 된다. 김상자는 그 폭력을 멈추게 하는 마무리 구를 놓는다. “관세음보살”은 종교적 표지이기 전에, 분류의 칼날을 거두는 자비의 언어다. 여기서 경(敬)은 사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이며, 타자를 타자대로 두려는 응시의 윤리다. 낯설게 하기는 단지 인지적 효과가 아니라 윤리적 전환으로 완성된다. ‘정답’(나비/나방)을 급히 내려는 마음을 멈추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순간, 하이쿠는 세 줄로 윤리의 급변을 수행한다.
‘달빛 여울가’는 자연의 장면이지만, 사실은 긴장의 장면이다. 왜가리와 물고기는 포식과 피식의 관계다. 그러나 김상자는 그 긴장을 ‘폭력의 이야기’로 확장하지 않고, 달빛 아래의 리듬으로 놓는다. “서서 잠든”과 “하품”이라는 느린 행위가 여울의 흐름과 달빛의 정지 사이에서 정렬될 때, 장면은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얻는다. 칸트의 ‘무관심적 쾌’(disinterested pleasure)는 대상의 소유나 교훈의 욕망을 내려놓을 때 가능한데, 이 작품은 바로 그 내려놓음을 형식으로 만든다.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책임이 아니라, 의미를 해설로 주지 않고 배치로 주는 형식의 윤리다. 유교미학의 경은 그 윤리를 가능케 하는 시선의 자세다.
“마른 가지 툭/담장 밑 흰 고양이/동그란 두 눈”에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두 눈’이다. 상징으로 소비되는 순간 대상은 사라진다. 김상자는 상징화를 억제해 고양이를 살린다. “툭”이라는 작은 소리로 시작해 “두 눈”이라는 정지로 끝나는 리듬은 독자의 해석 욕망을 한 번 꺾는다. 그 꺾임이 바로 낯설게 하기의 효과이면서, 동시에 경의 윤리다. 대상은 내 의미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응시를 교정하는 타자로 남는다. 이때 하이쿠는 짧은 형식으로 길게 남는 태도를 만든다. 태도야말로 유교미학이 말하는 ‘형식의 본질’이다.
서평
『봉숭아 꽃물』의 첫 인상은 “짧음”이 아니라 “짧음이 남기는 지속”입니다. 작가는 교사·상담·박물관 운영으로 이어진 삶의 궤적을 “아이들·이야기·기억”의 축으로 회고하며, 하이쿠를 “한 줄임에도 끝나지 않는 잔향”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합니다.
봉숭아 꽃물이 손톱에 들이면 쉽게 지워지지 않듯, 이 작품집의 한 줄들은 독자의 감각에 얇게 스며들어 오래 남습니다. 책의 표제는 바로 그 ‘남아 있는 흔적의 미학’을 정확히 겨냥합니다.
1) 사계의 조직, 일상의 촉감으로 완성된 계절성
이 책의 사계는 전통적 ‘자연 표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가을의 장면은 조각보·백자·보이차 같은 한국적 미감의 오브제를 통해 “절제·균형·고요”의 감각으로 응축됩니다(책에는 해외 독자를 위한 주석도 함께 배치됩니다).
동시에 겨울의 장면은 “라디오 일기예보—첫눈”처럼 동시대 생활 리듬(미디어·도시 일상)을 끌어안으며, 계절을 ‘살아내는 시간’으로 갱신합니다.
2) 형식이 윤리가 되는 순간—‘유교미학’의 현대적 재배치
이 작품집의 핵심 특징은, 5-7-5(혹은 한국어 3행의 압축)가 단지 규칙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말의 태도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수록 평론은 유교미학의 형식을 “권력의 장식”이 아니라 “관계의 파열을 막는 기술”로 재정의하며, 예·악·경·성·중용을 감정 억압이 아닌 감정의 ‘자리 배치’로 설명합니다.
이 관점에서 김상자의 하이쿠는 교조를 설파하지 않고, “절도·조율·응시·지속”을 세 줄의 리듬으로 실천해 보이는 방식으로 유교적 형식주의에 대한 오해를 교정합니다.
이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로 평론이 직접 분석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마른 가지 툭 / 담장 밑 흰 고양이 / 동그란 두 눈” — 이 작품에서 상징화를 억제하고 대상(고양이)을 ‘살려 두는’ 방식이 곧 경(敬)의 윤리, 즉 타자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응시로 읽힙니다.
3) 2020년대 한국하이쿠의 시대적 징후—전통의 오브제, 도시의 리듬, 번역의 확장
『봉숭아 꽃물』은 전통과 현재를 같은 호흡으로 놓습니다. 한쪽에는 조각보·백자 같은 한국 미감의 상징이 있고,
다른 쪽에는 라디오 예보, 크리스마스 리듬, 지하철 창 같은 도시적 장면이 놓입니다(평론은 이런 장면을 현대의 “신독(愼獨)” 감각으로까지 확장해 읽습니다).
여기서 시대성은 “현대 소재를 쓴다”는 차원을 넘어, 감각의 자동화를 끊고 다시 보게 만드는 장치로서의 형식(낯설게 하기)과 연결됩니다.
또 하나의 시대적 특징은 한영 병기(영문 표제·번역, 문화 주석)가 작품집 내부에 체계적으로 들어와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한국하이쿠가 더 이상 국내 독자층에만 머물지 않고, 번역을 통해 ‘공감의 구조’를 설계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합니다.
4) 이 작품집이 남기는 것
『봉숭아 꽃물』은 거창한 결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설명” 대신 “배치”로 의미를 주는 하이쿠의 윤리를, 사계와 생활의 디테일 속에서 꾸준히 증명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난 뒤 독자에게 남는 것은 해석의 정답이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자세—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다치지 않게 말하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평론이 말하듯, 형식은 차갑지 않고 “삶을 지속시키는 온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김상자의 세 줄이 조용히 보여줍니다.
판권지
지은이 / 김상자
편집인 / 김수성
펴낸곳 / 도서출판 해찬솔
등록 / 2013년 2월 26일(제2020-000012호)
주소 / 울산광역시 남구 번영로 165
전자메일 / bunmei@hanmail.net
전화 / (070) 4239-0327
제1판 제1쇄 2026년 2월 27일
값 18,000원
ISBN 979-11-967969-7-6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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